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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자동차 회사 - 폭스바겐의 역사와 앞으로의 전략

세계 1위 자동차 회사 - 폭스바겐의 역사와 앞으로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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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폭스바겐의 역사와 앞으로의 전략에 대하여 알바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는 어디인가요?”라고 물으면, 모두 입을 모아 폭스바겐이라고 대답합니다. 폭스바겐(Volkswagen)은 2020년 기준으로 연간매출 4,082억 달러(약 440조 원)를 기록한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입니다. 1937년에 설립된 폭스바겐은 독일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에 본사가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독일어로 국민(Volks) 자동차(Wagen)라는 뜻으로서, 모든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수입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폭스바겐은 올드비틀, 뉴비틀, 더비틀 등 딱정벌레 같은 ‘비틀’ 자동차와 8세대까지 이어져 오는 해치백의 대표 모델인 ‘골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 폭스바겐의 탄생

폭스바겐의 역사는 독일의 정치적 변화와 자동차 엔지니어링의 결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수상으로 집권하면서 독일 경제는 어수선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당시 자동차는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히틀러는 전 국민이 탈 수 있는 보급용 차량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이 소중한 프로젝트를 위해 아돌프 히틀러는 자동차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와 만났습니다. 포르쉐 박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자신의 회사인 포르쉐 엔지니어링 오피스를 통해 스포츠카와 경주용 자동차를 개발하며 자동차 엔지니어로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히틀러는 종이가 없어서 냅킨을 뽑아 딱정벌레 모양의 자동차 시안을 그린 후, 포르 쉐  박사에게 독일의 국민차 개발을 요청했습니다.

포르쉐  박사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연료 효율성, 안전성, 사용 편의성, 경제성 등을 고려하여 비틀이라는 국민차를 개발하기 위해 약 3년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37년, 비틀은 최종적으로 개발되어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고, 이 차량은 전 세계에서 무려 2,000만 대 이상이 팔리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폭스바겐의 역사는 갈라져 나갔습니다. 히틀러는 독일의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폭스바겐 공장을 활용하고, 군용 차량으로 개조되어 생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폭스바겐은 전쟁의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폭스바겐 비틀의 원래 국민차로의 꿈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폭스바겐의 역사는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폭스바겐

2차 세계대전으로 폭파된 폭스바겐 공장은 미국인을 거쳐 영국인의 수중에 넘어갔습니다. 1946년, 이 공장은 영국 군인들에 의해 운영되며 폭스바겐 비틀 모델을 매달 1,000대씩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폭스바겐을 이용하여 프랑스 국민차를 개발하려 했지만, 이 시도는 푸조의 창업자 장-피에르 푸조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는 히틀러와 협력했다는 혐의로 연합군에게 잡혀 디종감옥에 수감되어 20개월간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페리 포르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아들,는 아버지보다 먼저 석방되었고 오스트리아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포르쉐 설계사무소를 세웠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치시탈리아에서 경주차를 설계해 돈을 모았고, 1951년에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가족은 폭스바겐과 포르쉐의 미래를 이끌었습니다.

폭스바겐과 포르쉐는 각자의 길을 걷며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주요 역할을 하고, 특히 포르쉐는 스포츠카의 원형인 356을 기반으로 한 차량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자동차 브랜드는 역사와 기술적 혁신을 통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자동차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3. 폭스바겐의 공격적 인수-폭스바겐 그룹사

폭스바겐의 브랜드 인수와 합병의 역사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아우디, 세아트, 스코다, 람보르기니, 폭스바겐상용차, 두카티 등 다양한 자동차 브랜드가 폭스바겐그룹의 일부로 합병되거나 인수되었습니다. 이것들의 합병과 인수 과정은 폭스바겐그룹이 자동차 산업에서 다양한 시장과 세그먼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성장하는 데 기여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1) 아우디 (Audi): 아우디는 1932년에 아우토 유니온을 통합하여 탄생한 브랜드로, 폭스바겐그룹의 자회사로 속합니다. 폭스바겐은 1960년대에 아우디의 지분을 인수하고 나중에 완전히 통합하였으며, 아우디는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 세아트 (SEAT): 스페인의 자동차 브랜드 세아트는 폭스바겐그룹의 자회사로, 1986년에 폭스바겐이 지분을 확보하였고 나중에 완전 인수하였습니다. 세아트는 스페인에서 매우 인기 있는 브랜드로, 폭스바겐그룹의 제품 라인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3) 스코다 (SKODA): 스코다는 체코의 자동차 브랜드로, 1991년에 폭스바겐그룹의 일부로 합병되었습니다. 스코다는 폭스바겐그룹 내에서 가치 있는 대중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품질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차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4) 람보르기니 (Lamborghini): 람보르기니는 슈퍼카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1998년에 폭스바겐그룹에 인수되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폭스바겐그룹의 슈퍼카 부문을 주도하며 고성능 자동차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5) 폭스바겐상용차 (Volkswagen Commercial Vehicles): 폭스바겐상용차는 폭스바겐그룹의 자회사로, 1995년에 독립적인 브랜드로 설립되었습니다. 주로 상용차와 벤처 밴을 생산하며,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6) 두카티 (Ducati): 두카티는 오토바이의 세계적인 브랜드로, 2012년에 폭스바겐그룹에 인수되었습니다. 두카티는 고성능 오토바이를 생산하며, 폭스바겐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폭스바겐그룹을 다양한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자동차 제조업체로 만들어 주었고, 그들 각각의 독특한 특성과 시장 포지션이 그룹의 전략적 다양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폭스바겐그룹은 이러한 브랜드들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립하고 있습니다.

 

4. 포르쉐 가문과 피에히 가문

폭스바겐그룹과 포르쉐 가문, 그리고 피에히 가문 사이의 역사는 독일 자동차 산업의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가문 간의 관계와 갈등은 독일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폭스바겐그룹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 포르쉐 가문:

-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는 독일의 자동차 엔지니어로, 비틀 자동차를 개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아들인 페리 포르쉐는 포르쉐 회사를 이끌었고, 1972년에 주식을 공개하고 경영에서 물러났습니다.

 

-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친손자인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포르쉐 디자인을 기반으로 자신의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였고, 그의 디자인은 스포츠카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볼프강 포르쉐는 페리 포르쉐의 동생으로, 처음에는 경영에서 물러났으나 2007년에 포르쉐 회장으로 복귀하였습니다.

 

2) 피에히 가문:

-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딸 루이제 포르쉐(Louise Porsche)는 피에히 가문의 일원으로 안톤 피에히(Anton Piëch)와 결혼하였습니다.

 

- 루이제 포르쉐는 오스트리아에서 포르쉐의 유럽 내 판매망을 구축하였으며, 안톤 피에히는 변호사이자 포르쉐 가문의 동업자였습니다.

 

-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는 자동차 산업에서 큰 역할을 하였으며, 폭스바겐그룹의 최고 권력자로서 다양한 인수합병과 전략을 펼쳤습니다.

 

- 피에히 가문과 포르쉐 가문은 폭스바겐그룹 경영권을 함께 지키기로 합의하고, 폭스바겐그룹의 지주회사인 포르쉐 SE를 통해 의결권을 공동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협력의 역사를 통해 폭스바겐그룹은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그 가운데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역할은 특히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독일 자동차 산업과 폭스바겐그룹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5. 폭스바겐의 중국 진출

폭스바겐의 중국 시장 진출 과정은 중국의 자동차 산업 성장과 함께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전략은 중국의 개방 정책과 폭스바겐의 시장 점유율 확보 및 기술 이전을 통한 이익을 고려한 결과로 이뤄졌습니다.

 

1) 개방 정책:

중국 정부는 1980년대에 산업화를 가속화하고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개방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로 인해 외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기술 및 자본을 공유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2) 폭스바겐의 진출:

- 폭스바겐은 중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중국 정부의 조건 중 일부는 폭스바겐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관용차를 공급하고, 다른 외국 자동차 업체의 투자를 제한하며, 관세 조정을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3) 제휴와 합작사 설립:

- 1985년, 폭스바겐은 상하이자동차와 합자회사인 상하이따쫑(上海大衆)을 설립하여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 1991년, 폭스바겐은 중국의 이치자동차(一汽)와 합작회사인 이치따쫑(一汽大众)를 설립하여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 2016년에는 중국 장화이자동차(江淮汽车)와 제휴하여 중국의 전기자동차 시장에 진출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폭스바겐은 중국에서의 강력한 입지를 확립하고, 중국 시장의 성장과 함께 폭스바겐의 글로벌 매출액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대중 자동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은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내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기자동차 분야에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6. 폭스바겐의 전기자동차 전략

폭스바겐의 전기자동차 전략은 현대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과 영향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폭스바겐의 전기자동차 전략과 관련된 몇 가지 주요 포인트입니다:

 

1) 전기자동차 플랫폼 (MEB): 폭스바겐은 MEB 플랫폼을 개발하고 도입함으로써 효율적인 전기자동차 생산을 실현하고, 다양한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플랫폼은 전기자동차를 대중화시키고 다양한 시장 세그먼트에 맞춤형 모델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 플랫폼 공유 전략: 폭스바겐은 MEB 플랫폼을 외부 제조 업체나 스타트업과 공유하고 판매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수익 창출을 극대화하고, 자동차 시장에서의 포용력을 높였습니다. 이것은 자동차 산업의 혁신적인 변화를 나타냅니다.

 

3)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 폭스바겐은 2026년을 목표로 휘발유와 디젤 등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선언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친환경 모빌리티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를 고려한 중요한 스텝입니다.

 

4) 경쟁사의 전기차 전환: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도요타와 GM 등 다른 대형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 및 전기자동차에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형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산업을 주도하고 새로운 경쟁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7. 마무리

폭스바겐의 이러한 전략은 기후 변화 대응과 친환경 모빌리티에 대한 글로벌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입니다. 또한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며, 이에 따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환경 및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됩니다.